이제 전자책으로 나온 “그 외계 행성의 파편화된 이야기”
2021년 말에 열렸던 전시가 있다. ‘수건과 화환’이라는 공간에서 열린 ‘텍스트 뷔페’ 전시다. 지금 현재, 2022년 여름/가을에는 <텍스트 뷔페 TEXT BUFFET VOL.2>라는 이름으로 돌아오기도 한, 게다가 참여 작가들에게 사례비를 제공하고자 하는 포부를 품었기에 멋지지 아니할 수가 없는 전시였고, 전시이다.
1회 전시 때 이예현 운영자 님이 참여를 제안해 주셨을 때, 소설이 어떤 형태로 전시에 참여하면 흥미로울까, 생각했다. 기획서를 보고 추가 설명을 듣자, 내게 가장 중요한 점들은 이것 같았다.
방문객들이 참여 작가의 글을 전부 수집할 수도, 수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그 수집 순서를 작가가 컨트롤할 수 없다는 점.
소설, 나아가 극이란 대개 기승전결이 있는데, 이 전시의 경우에는 그게 기승전으로 둔갑할 수도 있고 기승결으로 변신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순서가 뒤바뀌어 전승기가 태어날 수도 있고 결전승이 발현될 수도 있다는 게 일반적으로 내가 경험해 볼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됐다.
또한, 폰트를 컨트롤하는 것도 평소 같았으면 없을 일이었다. 내 글을 읽는 독자 대부분은 전자 기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 가지 특징을 활용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도 보람 있는 일이고, 방문객에게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되, 전부 읽지 않아도, 그리고 순서를 뒤죽박죽 읽어도 어떤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폰트 그 자체에도 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써야겠다고.
그밖에 다른 제한이라면 분량밖에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작업이었다. 쓰면서 매우 즐거웠다. 이 글은 써둔 글이 아니라, 이 전시 때문에 쓴 글이다. 나는 그 작업 방식이 좋았다. 그리고 1회 전시가 잘 진행된 것 같아서 좋았고, 2회 전시도 성공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방문객의 역할이 중요하다.
직접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는 방문객들이 있다는 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돈은 한 번도 ‘그냥 돈’인 적이 없었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지갑으로 투표하는 거라고. 시장 경제의 모든 게 그렇다. 그러니 전시 티켓을 사 준 사람들은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내가 하는 일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얼추 그 범주에 들어가기도 하는 것 같은데, ‘예술’이 순전히 누군가의 ‘도움’을 빌어서만 이루어지는 일부 경향을 나는 슬퍼한다. 크리에이터를 위한 ‘기부’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이유도 비슷하다.
‘거래’라는 단어에 대해 ‘돈’과 마찬가지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나는 ‘예술’이 ‘거래 가능함’의 반열에 들어설 때 ‘도움’만 기대하는 처지인 것보다 훨씬 자유로워질 거라고 기대한다. 거래가 가능해지는 순간, 예술가는 (그 정의가 대체 무엇이든지 간에) ‘합당한 가격’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을 지불할 의향도 없으면서 예술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자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단 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비자’의 권리를 들이대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터넷 키보드 워리어들이 그렇다. 심지어 돈을 ‘지불’하는 듯한 기금 단체들도 그런 경우가 있다. 왜냐? 그들이 원하는 건 예술의 아웃풋이 아니다. 예술을 ‘도와’줌으로써 자신들 단체의 위대함을 뽐내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소비자,’ 진짜 돈을 낸 사람, 시장 경제의 꽃을 사랑한다. 내 이야기에 자기 피 같은 돈을 한 푼이라도 쓴 사람.
제아무리 팔로워 수, 구독자 수, ‘영향력’ 따위의 단어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 난무하는 것 같아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인터넷 그 자체가 아니다.
인터넷 외의 세상도 있다.
영어 블로그에서 전에 말했듯이, 나는 빌보드 장사를 하지 않는다.
내가 내 책에 값을 매기고 그것을 파는 이유다.
또한, 몇몇 진짜로다가 친절하시고 감동적인 독자님들이 Shut up and take more of my money를 외치려고 나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내시는 엄청나게 용감한 (나는 그렇게까지 능동적이지 않아서...) 행동을 보여줬을 때, ‘책의 값은 그저 당신이 이미 지불한 책의 값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는 요지의 답장을 보내는 이유다. 돈을 이미 지불하고도 더 지불하고 싶어 하는 그분들의 마음은 고맙지만, 더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 ‘예술’은 ‘더’ 혹은 ‘덜’이 아니라 딱 그 가격으로 굴러간다.
그리하여, 여기 전자책 버전의 표지가 있다. 제목은 전시 때도, 지금도, 검은 구름 행성의 꿈이다.
전시 때 썼던 인쇄물의 디자인을 EPUB에 그대로 넣었다. 여기서 글씨체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조금 스포일러인가...) 동시에 이미지는 전자 기기에서 읽기 어려울 수가 있으니, 텍스트만 뽑아 일반적으로 EPUB에서 사용되는 형태로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전시 때 사용했던 디자인 그대로를 인쇄해 보고 싶다면, 페이힙 스토어 버전을 구매하면 된다. 거기에는 EPUB 버전과 원본 PDF가 둘 다 있다.
전자책 형태인지라 순서가 없을 수는 없어서, 맨 앞에 안내문을 넣었다. 지금 여기서 설명한 것의 짧은 버전이다. 전시의 느낌을 재현하고 싶다면 챕터를 랜덤으로 선택해 그 순서대로 읽든가, 시간 제한을 정해놓고 그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것만 읽든가, 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내가 인쇄소를 갖게 된다면 이런 이야기를 여럿 써서, 화살통 같은 것에다 담아 팔고 싶다. 화살통은 원형일 게 아닌가? 그리고 각 챕터가 롤 형태로 돌돌 말려 있다면, 내용물을 볼 수 없을 것이고, 마치 뽑기를 하듯 이야기를 소비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소비’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투자’보다 뭐가 그렇게 나쁜가 싶다.
소비자들 덕분에 나는 이야기 쓰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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