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병의 위험을 옛날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하다. 아뉘… 개미의 알에다가 사자가 정액 뿌리고 지나가서 태어나는, 끔찍한 것도 모자라서 어이없는 혼종인 미르메콜레온을 그 위험을 알지 않고서야 왜 상상해냈겠냐는 말이다.

초식도 육식도 하지 못해 굶어 죽는 이 불쌍한 녀석의 존재 이유는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다고 떵떵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존재들에 대한 경고 비슷한 것이었을 것이다.

‘긍정’은 쓸모가 없다. ‘부정’도 그렇다. 아무리 작은 거라도 실제로 행동을 하고 나면 ‘긍정’이나 ‘부정’이란 아무 쓸모가 없는 레이블에 불과하게 된다.

내가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하고서 매일 10분씩 줄넘기를 한다면, 거기에 나를 포함한 그 누가 긍정이나 부정을 갖다 붙여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내가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하고서 매일 단어를 한 개씩이라도 외운다면, 거따 대고 누가 긍정/부정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더 작은 거, 혹은 작은 듯한 예를 들어보자. 설거지. 내가 매일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식사가 끝난 후 금방금방 하겠다고 결심했다고 해보자. 그걸 내가 실천하는 데에 있어서 긍정/부정이 무슨 상관?

10분씩 매일 줄넘기를 하면 1년에 3560분이다.

단어를 한 개씩 매일 외우면 1년에 356개다.

설거지를 매일 바로바로 한다면, 와우,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게 스스로 ‘긍정’이라고 한다면야 할 말이 없다. 왜냐? 개인이 긍정이라고 하면 긍정인 거라서 그렇다. 그러니 그런 레이블이 ‘소용’이 없다는 거다.

‘긍정’은 기준으로서 전혀 작용하지 못한다. 그냥 느낌이다.

누군가는 ‘겨우 고작 하루에 10분’ 줄넘기를 하는 것을 같잖게 볼 것이고, ‘겨우 고작 단어 1개’를 외우는 것을 깔볼 것이고, ‘겨우 고작 설거지 좀 하는 것’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것이다. 즉, ‘겨우 고작’ 그 정도밖에 못 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거란 얘기다. 그게 상관이 있나? 상관이 없다. 내가 내 할 일 하는 데에 아무 상관이 없다.

타인이 나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 역시 별로 상관이 없다. 내 기분이야 좋을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내가 내 결심을 이행하는 데에 별로 딱히…

비슷하게 내가 나 자신의 결심을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보는 것 역시 별로 쓸모가 없다. 자신의 목표를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여기는 부정적 관점을 갖는 경우와 비슷한 빈도수로, 자신이 목표를 이루는 게 당연하고, 자신은 위대하며, 그래서 못 할 일이 없다고 말만 하고 다니는 ‘긍정적’ 관점을 갖는 경우를 봤다.

두 경우 모두,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건 똑같다. 오히려 후자가 더 위험한 경우라는 게 이번 팟캐스트 에피소드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가장 간단하게는, ‘난 너무 보잘것없어’라고 한다면 누군가가 ‘아니야, 그렇지 않아’라고 해줄지도 모르지만, ‘난 굉장히 낙관적이고 언제나 꿈을 갖고 있으니까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희망을 가질래’라고 한다면 ‘헛소리 작작 하고 할 일을 정해서 빨리 그것부터 해라’고 말해줄 사람의 수가 적어서 그렇다.

그래서 미르메콜레온은 위선과 우유부단함에 대한 풍자의 수단이다. 긍정병이 부정병보다 더 위험하다. 긍정병은 참으로 누가 도와주기가 애매하다. 자기가 긍정한다는데, 특히나 아무 결과물도 내지 못한 상태로도 자신의 위대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데, 그걸 깨뜨리는 게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봐라. 뭐가 긍정인지 부정인지에는 기준이 없다.

결론이 있다면, 자기가 하겠다고 한 걸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 자기 스스로, 긍정과 부정 사이에서 착각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것?

그 정도일 테다.


Ithaka typing 묶음 1 검은 구름 행성의 꿈 유랑 화가 - 싱싱의 그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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