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가 샌프란시스코에 온다
10월 중순에 온다 한다. 그리고 나는 내년 봄에 D를 보러 그리로 가지 않을까 한다.
완.전.신.나.
이런 계기가 없더라도 여행을 가려면야 갈 수 있겠지만,
코로나 제한 때문에 매우 귀찮.
무목적성 여행의 공허함을 돈, 시간, 노력을 써가며 느끼기 싫음.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가지 않을 거고, 최근 3년 동안 가지 않았다.
1이야 나 개인이 어쩔 수 없는 거고, 2에 대한 생각은 모두가 다를 거라 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이란 단어를, 더 나아가서는 ‘유용함’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가 모두에게 달라서다.
마치 이런 거다. 내가 아는 어떤 할배 작가는 ‘일’이란 것을 매우 괴롭고 힘들게 생각하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일’ 때문에 울고, ‘일’ 때문에 웃는 일은 절대 없었던 부모 때문에 이 작가는 ‘일’이라는 단어에 대해 거의 PTSD급의 반응을 보인다. (실제로 그 비슷한 심리적 방어기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는 절대 글쓰기를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후배 작가들에게 전하는 글이나 영상의 경우, 글쓰기를 ‘일’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일’에 관한 그런 나쁜 코노테이션이 전혀 없단 말이지. 나에게 ‘일’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나머지 하루의 대부분을 쓰고 싶은, 그런 작업을 말한다. 그러니 나에게 ‘취미가 일이 되면 스트레스받는다’ 같은 말이 통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내가 하는 어떤 일(thing)을 일(work)이라고 한다고 해서 진저리가 나지도 않는다.
비슷하게, 나의 추측으로는, ‘유용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PTSD급의 심리적 방어기제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 듯하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다. 단어는 사전에야 마치 박제된 듯하지만, 절대 모두에게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 유용성도 그렇고, 가족, 사랑, 연애, 관계, 심지어 물, 불, 공기, 흙처럼 물성이 있는 무언가를 나타내는 단어도 그렇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나는 최근 5년? 특히나 글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내놓기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유용성을 따진다. 유용성을 안 따질 때, 더 안 좋게는 안 따지는 척할 때보다, 대놓고 유용성을 따질 때가 훨씬 좋았다.
이를테면,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그 이유가 다만 그것이 무용해서였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고’ 싶었으며, ‘어딘가로 떠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여행을 해서 뭔가 기억에 남을 만했냐고 묻는다면, 아니, 별로... 도피성 여행이었으니까. 무용이 목적이었으니. 그래서 돌아오고서도 기분이 안 좋았고, 돈을 번다는 점 빼고는 나한텐 별로 안 유용한데 남한테만 유용한 일 같았던 회사 일을 하면서 계속 다시 무용해질 방법을 찾곤 했다. 다음 휴가, 다음 여행, 다음 도피를.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서 더 자신 있게 유용성을 따진다. ‘작가’는 너무 광범위한 업이라서, 유용한 점을 못 찾는 게 말이 안 되니까 더욱 그렇다. 대체 작가한테 유용하지 않을 게 뭐란 말인가? 길 가다가 머리에 도토리가 떨어져도 이야기거리가 되는 게 작가다.
그렇다면 아무 때나 아무 데로다 아무 여행이나 가면 되지, 왜 D가 샌프란시스코로 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냐고 물을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바로 모든 게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거기 갈 이유가 없었던 거다. 직장생활을 하며 남에게 유용하다가 도피성 휴가를 떠나 무용해짐으로써 ‘쉼’을 택했다고 착각했던 그때와 달리, 이제 나는 집에서 일을 해도 불행하지 않다. 이 일은 나를 위한 일이다. 누가 지나가다 내가 한 일을 좋다고 하면 좋은 거고, 아님 마는 거다.
나는 이제 집에서 일해도 매우 생산성 있고, 매우 유용하다, 이 말이지. 샌프란시스코에 간다고 해서 저절로 더 유용해지진 않는다, 이 말이지.
하지만 적당한 변화란 유용성의 빅 픽쳐에 좋기에, 나는 이런 계기를 기다려왔다.
완.전.신.나.
여기다 추가적으로 노리고 있는 더욱 더 유용한 보람 픽쳐가 있는데, 그것은 이혜원 기획자 및 오막과 얽혀 있다. 과연 그것이 실행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니까, 그때가 되어서 다시 얘기를 꺼내겠다.
일단 아무래도 내년 봄에 내가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건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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